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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서진은 독립운동가 후손이 아닙니다. 거짓언플은 이제 그만!!!

 

배우 이서진은 독립운동가 후손이 아닙니다. 거짓언플은 이제 그만!!!

배우 이서진은 독립운동가 후손이 아닙니다. 거짓언플은 이제 그만!!! 2

 

———> 티비조선에서부터 이서진 독립운동가 후손이라고 개뻥치기 시작함...

———> 백제 도자기 기법이 다행히 일본에 전해져서 이어진거라는 개소리를!!

이번 집사부일체에서 한국정부에서 농수산물 수입금지한 아오모리현에 가서 청정지역이라고 거짓 홍보해주고 수산물을 먹고 오는 말도 안되는 짓거리를 했는데요.
——한국정부는 지난 2013년 8개현에 대한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 초지로 강화했고 이에 대해 일본은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했다. 한국은 1심에서 패소했지만, 지난 4월 2심에서 이를 뒤집고 승소했다. 그런데 불과 두달 후에 이런 방송을 하다니!!! 
또한 그 와중에 이서진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사실을 만천하에 또다시 홍보하더군요. 

일본의 1급 전범 사사카와 료이치의 아들인 만든 사사카와 재단과 손잡고 일을 한 전력이 있고 아오모리 현 홍보대사까지 한 이서진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 이상룡 손자 아냐”…오류 보도 떠돌아 

종손 이창수 씨 “이서진 씨와는 촌수가 20촌 넘을 것” 

‘임청각 국가헌납’도 이뤄진 적 없어 

이서진 소속사 “집안사람이라고 여러 번 기사 나와”

3ㆍ1절을 앞두고 탤런트 이서진이 독립운동가 후손인가를 놓고 이런저런 말들이 돌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 이서진을 독립운동가 이상룡 선생의 손자라고 보도하고, 그의 소속사에 그런 기사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서진은 독립운동가 이상룡 선생의 손자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상룡 선생의 종손 이창수 씨는 “이서진 씨는 집안 기준으로 일가친척은 맞지만 아주 먼 친척”이라고 말했다. 

최근 여러 언론이 이서진 씨가 이상룡 선생의 친손자이며, 이상룡 선생이 이서진 씨의 증조부라고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상룡 선생은 누구인가 

이상룡 선생은 1858년에 출생한 독립운동가다. 호는 석주(石洲)이며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고성 이씨로 1911년에 서간도로 망명했다. 1919년 5월에는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를 신흥무관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독립운동 간부를 양성했고, 1925년 9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國務領)에 취임했다. 

이상룡 선생의 아들은 이준형 선생이고, 이준형 선생의 아들은 이병화 선생이다. 이준형 선생과 이병화 선생도 모두 독립운동을 했다. 이병화 선생은 총 6남1녀를 두었는데 장남 이도증 씨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고 둘째 아들 이세증 씨는 한국 전쟁 때 실종됐다.

셋째 아들 이석증 씨와 넷째 아들 이철증 씨는 타계했다. 현재 남아 있는 이병화 선생의 아들은 다섯째 아들인 이항증 씨와 여섯째 아들 이범증 씨이다. 이항증 씨와 이범증 씨 사이에 있는 이병화 선생의 딸인 이혜정 씨도 생존해 있다. 

탤런트 이서진의 부친은 이재응 씨이며, 조부는 이보형 전 제일은행 행장이다.

이상룡 선생의 후손들은 이서진을 먼 친척으로 볼 수는 있지만, 이서진이 이상룡 선생의 직계 후손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상룡 선생의 종손인 이창수 씨는 “이서진 씨는 집안 기준으로 일가친척은 맞는데 석주 이상룡 선생 후손은 아니다”라며 “촌수를 굳이 따지면 스무 촌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수 씨의 숙부인 이항증 씨(이병화 선생의 다섯째 아들)는 “이서진 씨 할아버지는 우리 할아버지의 친척이고 옆집에서 대대로 같이 살았다”며 “이서진 씨의 할아버지가 나를 많이 도와줘서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서진 씨는 직접 만난 일이 없고 이서진 씨 아버지도 만난 일이 없다”며 “그렇지만 이서진 씨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자주 만났으며 촌수는 직계가 아니지만 이서진 씨의 할아버지는 나와 굉장히 밀접한 관계”라고 설명했다. 

이항증 씨는 현재 이상룡 선생 생가인 안동 임청각을 관리하고 있다. 임청각은 보물 제182호이며 1519년 기묘년에 건립됐다. 경북 안동시 임청각길 63에 있으며 숙박체험 및 양반식사 체험이 가능하다. 

임청각은 본래 99칸 집이었다. 그렇지만 일제가 ‘불령선인’(불온한 조선인이라는 뜻)이 여럿 태어난 집이라고 중앙선 철로 공사 때 50여 칸의 행랑채와 부속 건물을 철거해 규모가 크게 줄었다.

임청각 국가헌납도 사실 아냐 

이렇게 수난을 겪은 임청각은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뻔했다. 이상룡 선생이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인과 임청각 매각계약을 맺었었다. 계약을 맺은 이후 고성 이씨 문중이 나서서 매매계약을 파기하고 임청각을 지켰다. 

2002년부터 임청각이 국가 헌납된다는 기사가 나왔고, 최근에는 임청각이 2002년에 국가헌납됐고 이를 이서진 씨의 조부인 이보형 선생이 주도했다는 기사들도 나왔다.

그렇지만 이상룡 선생의 후손들은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창수 씨는 “임청각을 관리하기 힘들어서 헌납을 하려고 했지만 헌납을 하려면 법적 소유권자여야 했다”며 “소유권 정리가 안 돼 헌납을 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서진의 소속사인 후크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이상룡 선생이 이서진의 증조부라는 내용이 담긴 잘못된 기사들을 왜 방치했느냐는 질문에 “이미 사실 집안사람이라고 기사가 여러 번 나왔다”고 말했다. 

주간한국] 탤런트 이서진, 독립운동가 후손 논란

곽호성 기자





*** 이상룡선생님의 후손 이항증씨의 또다른 인터뷰입니다.

조부와 부친께서 일제 치하에서 끝까지 호적 등록을 거부하셨다고요.

“증조부, 조부, 부모님이 다 독립운동을 하셨는데…. 증조부는 99칸 대저택인 안동 임청각에 살 정도로 대부호였죠. 노비만 수백 명이었으니…. 증조부가 상당수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으로 썼지만 그래도 남은 재산이 좀 있었는데 조부와 부친이 독립운동을 하느라 잘 관리를 못 하니까 그 사이에 문중의 다른 집에서 야금야금 빼갔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어떤 사람이 부친이 자기에게 판 거라며 매매계약서를 내미는데 1974년에 판 걸로 돼 있더라고요. 아버지는 1952년에 돌아가셨는데…. 조부와 부친은 고성 이씨 종손인데 일제 치하에서 호적 등록을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중에서는 재산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집안의 여러 구성원 명의로 등기를 했고, 수십 년이 지나면서 소유권이 불분명해졌지요. 형님들은 불령선인 자식이라고 학교도 못 다니고…. 그렇게 어려워진 거죠.” 

―불령선인 자식이라 학교를 못 다녔다고요?

“증조부, 조부, 부친 모두 조선총독부의 불령선인 명부에 올랐지요. 여기 오른 사람 자식들은 초등학교는 몰라도 중학교는 입학이 안 됐어요. 큰형님, 둘째형님이 그래서 중학교를 못 갔고…. 큰형님은 광복 후 친일파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잡혀갔다가 풀려난 지 며칠 후에 돌아가시고, 둘째형님은 6·25 때 행방불명되고…, 셋째 넷째형님들도 돈이 없어 진학을 못 하다가 한 분은 열차 사고로, 한 분은 그런 스트레스로 술을 너무 드시다가 일찍 돌아가셨지요.” 

―생활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제대하고 안동에 내려왔는데 옆집에 촌수는 멀지만 300여 년간 이웃하며 살던 문중 집안이 있었어요. 그 집 어르신이 탤런트 이서진 씨의 할아버지인데 그분이 조흥은행에 취직시켜 줘서 30년을 일했지요.” (당시에 은행원이면 괜찮은 직업 아닌가요?) “물려받은 재산은 없었고…. 아버지 없는 조카가 9명이나 되다 보니 큰 도움은 아니어도 아이들이 정착하는 데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어요. 집에서 인터뷰를 못 한 것도 (집이) 좀 그래서….” ——> 이 부분이 이서진 할아버지 이보형씨가 도와준 부분입니다. 

그냥 문중 사람인 이상룡 선생님 후손을 은행 취직만 시켜준것이고 진짜 독립운동가 후손인 이항증씨는 자신의 조카들을 챙기느라 평생 힘들게 살았던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독립 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삼대가 흥 한다”는 속설이 증명되네요. 
이상룡 독립운동가의 4대와 이서진 집안 3대가 너무 대비되서 마음이 아픕니다.

은행 하나 취직시켜준걸로 20촌이 넘는 독립운동가 이상룡 선생님 일가가 한 독립운동을 은근슬쩍 자기 직계조상이 한것처럼 만들어 언플을 해왔다니 가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서진 할아버지 이보형씨는 1912년생으로 일제시대에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조선저축은행에 입행,총무부장 인사부장 검사부장 영업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쳐 상무이사로 근무했다고 합니다.
이후 서울은행장,한국은행 감독부장,제일은행장 등을 역임했으며 범한화재해상보험 사장,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한국보이스카웃연맹 총재 등을 지냈다고 합니다.
티비조선 김갑수 평론가에 의하면 이서진 할아버지는 이미 1960년대에 은행장을 했는데 이건 요즘으로 치면 재벌총수에 비견되는 자리라고 극찬을 했습니다.
또한 유신정권시절 박정희의 신임이 두터워서 유일하게 은행장에서 잘리지 않고 오래오래 자리를 해먹은걸로 금융계에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 인연으로 이서진이 박근혜 대선시절 유세장에 나가서 지지하기도 했구요.
게다가 LG와 혼맥을 맺어서 재벌가와 연결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독립운동가 직계 후손이라는 거짓언플을 하다니!!!! [원글보기]

[참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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